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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방방곡곡]근대역사의 아픔을 품은 도시, 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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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3-30 12:07 조회1,3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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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급변하는 아시아정세 속에서 조선은 일본의 강압으로 맺어진 강화도 조약에 따라 부산, 원산, 인천, 목포, 군산을 개항하였다. 군산은 1899(고종 36) 일본에 개항되어 충청도와 전라도의 길목에 있는 지리적 이점으로 김제 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수탈하는 통로로 이용되었으며 개항장을 중심으로 일본인 상인과 관리들이 이주하면서 1930년 한때 13천 명 군산시민 절반이 일본인일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군산에서 득세하던 일본인들은 해방과 동시에 모두 철수했고, 그들의 재산은 모두 국가에 귀속되었다가 일반 공매절차를 거쳐서 개인에게 매각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지금도 군산시에는 아픈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으며, 개항 이후 형성되었던 옛 군산세관(전북도 지방기념물 제87),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국가등록문화재 제372) 및 조선은행 군산지점(국가등록문화재 제374) 등 일제의 잔재를 근대역사관광지로 지정하여 이 일대를 근대문화유산거리라고 칭하고 일제강점기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는 교육의 장으로 개방하였다.

 

군산시는 근대 서양식 건축물과 일본식 건축물로 인해 다른 곳에 와있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사진에 담기도 좋지만, 그 면면과 역사를 되짚어보면 아픔과 울분으로 맘이 숙연해지는 이야기가 서려 있는 곳이다. 잠시 여행을 떠나는 설렘은 접어두고 아직 아물지 않은 아픔이 남아있는 이곳을 둘러보자.

 

 군산내항

 

잔뜩 흐린 날씨에 빗방울이 흩날리는 군산항에 도착하니 매서운 바닷바람이 짭짤한 바다 냄새와 함께 얼굴을 스친다. 1899년 개항된 군산항은 큰 규모의 항구로 성장함과 동시에 조선에서 수탈한 물자들이 일본으로 넘어가는 주요한 통로가 되었다. 호남의 비옥한 평야에서 수확한 쌀들을 모아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해 언제나 일본 선박들로 가득 차 있었고 인근에 25만 가마의 쌀을 보관할 수 있는 창고가 여러 개 있었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 수탈의 규모가 어렴풋이 짐작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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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은 조수간만의 차가 큰 지형적 단점이 있는데 일본인들은 이런 불리한 환경 속에서 수탈한 쌀을 쉼 없이 수송하기 위하여 군산항에 뜬다리 부두를 설치했다. 밀물 때 다리가 떠오르고 썰물 때 수면만큼 수위에 따라 다리의 높이가 자동으로 조절되는 뜬다리(부잔교)3천 톤급 선박 4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다리로 이 시설을 통해 호남평야의 쌀들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그저 평범한 항구의 풍경 속에서 의미 없이 지나갈 수 있는 다리로 보이지만 좀 더 관심 있게 둘러보고 그 의미를 되새겨 보자.

 

이 외에도 군산 내항 주변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일본의 관공서와 은행으로 사용되었던 건물들은 현재 박물관으로 활용되어 일반인들에게 무료개방 되고 있는데 그 중 옛 군산세관은 100년의 역사를 지닌 건물로 서울역사, 한국은행 본점과 함께 국내에 남아있는 세 곳뿐인 유럽 중세건축양식 건물이라고 한다.

 

군산 내항 입구에 있는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에서는 군산의 근대문화 및 해양문화를 주제로 다양한 전시를 진행하고 있으며 군산항 한쪽에는 진포해양공원이 있는데 진포는 군산의 옛 지명으로 고려말 최무선 장군이 왜선 500여 척을 물리쳤던 진포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곳 테마공원에는 퇴역군함과 항공기, 무기 등이 전시되어 있어 아이들과 함께 찾기 좋은 곳이다.

 

동국사

 

일본식 건물과 근대건물들로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군산은 근대문화유산거리를 따라 도보로 여행하기 좋은 곳이다. 군산항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동국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 절은 그 규모는 작지만 국내에 유일한 일본식 사찰이라는 점에서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다. 1913년 일본 승려인 우치다에 의해 일본의 건축자재를 들여와 세워졌고 금강선사로 불리던 이곳의 입구에 들어서면 높은 팔작지붕과 하얀 벽으로 만들어진 에도시대 건축양식을 따른 대웅전이 정면에 자리하고 있는데 벚꽃 문양의 단청과 단조로운 처마는 일본식 건물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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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내부에는 소조석가여래삼존불과 복장유물(보물 제1718)이 전시되어 있고 내부의 벽을 따라 근대군산문화를 보여주는 각종 전시물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동국사는 대웅전과 승려들의 거처인 요사채, 종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절 뒤로는 대나무숲이 둘러싸고 있어 작지만 아늑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동국사의 일본식 종각에는 1919년 일본에서 주조되어 동국사에 봉안된 동종이 걸려 있는데 제작에 도움을 준 시주자의 명단과 금강선사의 창건내력, 일본 천황을 칭송하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일본의 침탈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곳에 참사문비라는 의미 있는 비문이 하나 서 있는데 1992년 일본 불교계가 일제의 조선침략행위를 참회하며 발표한 내용이 새겨져 있다. 이색적인 동국사의 풍경에 잠시나마 눈길을 빼앗겼지만 비문의 내용을 천천히 읽어보며 잠시나마 이곳을 방문한 의미를 잊었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무거운 마음으로 발길을 옮겼다.

 

히로쓰 가옥

 

군산 시내를 걷다 보면 심심치 않게 일본식 가옥들을 마주치게 된다. 신흥동 일본식 가옥(일명 히로쓰가옥)은 광복 후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적산가옥으로 일제강점기에 군산에서 포목점과 농장을 운영하던 일본인 건립한 2층 목조가옥이다. 두 개의 건물을 붙여놓은 형태에 오밀조밀한 일본식 정원과 건물 내에 온돌방 다다미방, 금고방이 있어 일본인 지주의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으며, 영화 장군의 아들타짜등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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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를 둥글게 말아 낸 동그란 창문과 작은 연못, 석등이 일본식 가옥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고 건물의 외관만으로도 그 호사스러움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건물 내부에 작은 수영장도 딸려 있으며 해방 후 50년간 호남제분지식회사의 관사로 사용됐지만 3월부터는 보존의 문제로 내부 공개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경암동 철길마을

 

군산항과 동국사, 히로쓰 가옥이 있는 신흥동 인근에서 약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사진작가들이 자주 찾고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의 배경이 되었던 경암동 철길마을이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바다를 메워 공장을 세웠던 자리에 광복 후 갈 곳 없는 이들이 아나둘 모여들었고 1944년 페이퍼코리아 사의 상품과 원료를 나르기 위해 만들어진 2.4km의 철길에 작은 판자집들이 다닥다닥 들어서면서 지금의 풍경이 완성되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기차가 다녔는데 그럴 때면 승무원들이 고함을 지르며 열차가 지나감을 알리고 기찻길 옆 작은 집들은 빨래를 걷고 아이들과 강아지를 집안으로 들이는 광경이 연출되었다고 하니 심기하기만 할 따름이다. 지금은 녹슨 철길을 기차 대신 관광객들이 오가며 채우고 있지만 화려했던 히로쓰 가옥을 거쳐 들른 이곳에서 알 수 없는 쓸쓸함과 허탈함이 느껴지는 것은 일제의 수탈과 광복 후 피폐해진 군산의 모습이 떠오른 안타까움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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